기억하고 지켜야 할 절기: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삶 (신명기 16장 1-17절)

염보연 2025.05.20 15:39:15

 

 

 

아빕월을 지켜 네 하나님 야훼께 유월절을 행하라 이는 아빕월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밤에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라 야훼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소와 양으로 네 하나님 야훼께 유월절 제사를 드리되 유교병을 그것과 함께 먹지 말고 이레 동안은 무교병 곧 고난의 떡을 그것과 함께 먹으라 이는 네가 애굽 땅에서 급히 나왔음이니 이같이 행하여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 그 이레 동안에는 네 모든 지경 가운데에 누룩이 보이지 않게 할 것이요 또 네가 첫날 해 질 때에 제사 드린 고기를 밤을 지내 아침까지 두지 말 것이며 유월절 제사를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주신 각 성에서 드리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야훼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유월절 제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 고기를 구워 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너는 엿새 동안은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 네 하나님 야훼 앞에 성회로 모이고 일하지 말지니라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네 하나님 야훼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야훼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야훼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 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즐거워하되 네 하나님 야훼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이레 동안 네 하나님 야훼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야훼께서 네 모든 소출과 네 손으로 행한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이니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야훼께서 택하신 곳에서 야훼를 뵈옵되 빈손으로 야훼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야훼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_신16:1-17

 

성경에서 반복되는 주제는 중요하다. 오늘 본문처럼 ‘절기’에 대한 말씀은 모세오경과 선지서, 그리고 신약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강조된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서는 절기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극히 희박한 것이 현실이다. ‘옛날 유대인들의 명절’로 치부하거나, ‘구약의 의식법’으로 취급하며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절기를 명령하신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 민족의 민속행사를 제정하시기 위함이 아니었다.

성경은 이 절기들을 ‘이스라엘의 명절’이라 하지 않고, ‘여호와의 절기’라 부른다. 이는 절기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선포하는 표현이다. 절기는 사람이 만든 전통이 아닌,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시간의 구조 안에 담긴 언약적 사인이다. 그렇기에 절기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것은, 하나님의 시간 개념과 구속사의 흐름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시간의 창조주이시며, 이 시간 안에서 사람과 만물의 삶을 운행하신다. 시간은 곧 생명이다. 그러므로 시간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내 욕망대로 시간을 사용하는 삶은, 곧 생명을 허비하는 삶이다. 신앙은 곧 시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하는 일이다. 내 삶의 시간에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진정 ‘거듭난 자’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간의 구속력 안에서 절기의 역할은 분명하다.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에, 하나님의 백성이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새기는 것이다. 절기는 단지 의식을 위한 행사가 아니다. 절기는 ‘말씀 듣는 시간’이며, ‘백성됨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이다. 모든 남자가 예루살렘에 모여야 했으며, 이 시간은 단지 제사나 축제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삶을 돌아보는 회개의 시간이었다.

특히 하나님은 창세기 1장에서 해와 달, 별을 만드시며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알게 하셨다. 여기서 ‘계절’로 번역된 히브리어 ‘모아딤’은 원래 ‘절기’라는 뜻이다. 곧 해와 달은 단지 시간 측정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시간을 알려주는 ‘영적 시계’인 것이다.

이 절기들은 단지 유대 민족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절기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거나, 성취될 예정이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달리셨고, 무교절에 무덤에 장사되셨으며, 초실절에 부활하셨고, 칠칠절(오순절)에 성령을 보내주셨다. 이처럼 절기들은 구속사의 사건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하나님은 창세 전부터 이 시간들을 계획하셨다.

이러한 절기적 세계관을 회복할 때, 신자는 신앙을 단지 사적인 구호나 감정의 영역이 아니라, 삶 전체를 재구성하는 실천적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모아딤’은 곧 ‘정해진 시간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모이는 것’이다. 이는 곧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혼인을 준비하는 신부의 훈련’이며, 이 절기들을 통해 교회는 거룩한 신부로 단장되어 간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회는 정작 하나님이 정하신 절기는 망각한 채, 사람이 정한 절기와 행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의 절기는 기억하지 않고, 성탄절과 부활절, 사순절 등 성경에 없는 이교적 배경의 절기들에는 더 열심인 현실은, 하나님 중심의 시간 질서에서 멀어졌음을 보여준다.

절기의 예식을 문자 그대로 따를 수 없다면, 최소한 그 의미와 정신은 깊이 새기고, 그 시간 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절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에 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었고, 앞으로 어떻게 성취될지를 묵상해야 한다. 이와 같은 반복되는 영적 훈련을 통해 성도는 매년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절기는 말씀을 향한 집중이고, 성령 안에서의 준비이며,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의 틀이다. 이를 무시하는 삶은 곧 말씀과 동떨어진 삶이고, 구속사적 흐름에서 벗어난 삶이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다가오는 이 시대에, 성도는 자신의 등불에 기름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절기를 통해 기름을 준비하고, 말씀을 중심에 두며, 삶의 싸이클을 하나님께 맞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지막 때, 깨어있는 신부가 살아가야 할 길이며, 진정한 교회의 회복이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우리가 예비된 기름을 들고 그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절기를 통해 말씀과 시간의 주권을 회복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